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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행이 금리를 올려도 엔화는 왜 약해질까

엔화 약세의 원인을 금리차 하나로 설명하기 어려운 국면입니다. 미일 금리차가 2년 새 절반 가까이 줄고 일본은행이 다섯 번 금리를 올렸는데도 엔은 지난 7월 1986년 이후 가장 약한 수준까지 밀렸습니다. 무역적자와 가계의 해외투자, 재정 우려가 엔을 끌어내리는 구조와 역대 최대 개입이 밀린 이유를 원자료로 확인했습니다.

곳간지기9분 읽기

금리를 올리는 나라의 통화는 강해진다는 것이 교과서의 공식입니다. 일본은행은 2024년 3월부터 다섯 번 금리를 올려 정책금리가 1990년대 이후 가장 높은 연 1%가 됐는데, 엔은 지난 7월 1986년 이후 가장 약한 수준까지 밀렸습니다. 공식대로라면 나올 수 없는 그림이고, 엔화 약세의 원인을 물을 때 진짜 궁금한 것도 이 어긋남입니다.

금리차 공식은 절반만 맞습니다

엔화 약세를 설명하는 가장 흔한 답은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이입니다. 금리가 낮은 엔을 팔고 금리가 높은 달러를 사니 엔이 약해진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격차는 여전히 큽니다. 한국은행 자료로 두 나라 정책금리를 월말 기준으로 재면 2026년 7월 미국이 일본보다 2.63%포인트 높습니다.

문제는 방향입니다. 같은 기준으로 잰 격차가 2024년 8월에는 5.13%포인트였습니다. 2년 사이 절반 가까이 줄었고, 그 사이 일본은행은 금리를 다섯 번 올렸습니다. 금리차가 원인의 전부라면 엔은 그만큼 강해졌어야 하는데, 엔/달러(1달러를 사는 데 드는 엔의 양, 숫자가 오르면 엔이 약해진 것)는 오히려 2026년 7월 29일 163.86엔까지 올라 1986년 12월 이후 가장 약해졌습니다. 다섯 번의 인상이 각각 시장에 어떤 일을 만들었는지는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을 다룬 글에서 날짜별로 계산했습니다.

달러가 강해서 생긴 착시도 아닙니다. 머니투데이는 7월 12일 자 분석 기사에서 미·일 금리차라는 익숙한 설명은 이번 국면의 절반만 해명한다 (새 창에서 열림)고 짚었습니다. 미국 고용지표가 예상을 크게 밑돌아 달러가 주춤하던 7월 초에도 엔은 반등을 지키지 못하고 나흘 만에 162엔대로 되돌아갔다는 것입니다. 달러가 쉬어갈 때도 엔이 못 오른다면, 나머지 절반의 원인은 일본 안에 있다는 뜻이 됩니다.

벌어오는 달러보다 나가는 엔이 많습니다

환율은 결국 두 통화를 사고파는 양으로 정해집니다. 일본으로 들어오는 돈과 나가는 돈을 세어 보면, 나가는 쪽이 구조적으로 많아졌습니다.

먼저 무역입니다. 일본 재무성의 예비 집계로 올해 상반기 무역수지는 1조100억엔 적자였습니다. 아시아경제 7월 22일 자 기사 (새 창에서 열림)에 따르면 수출이 반도체와 자동차 호조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3.7% 늘었는데도 수입이 61조6700억엔으로 여전히 수출보다 많았고, 기사는 중동 전쟁으로 오른 유가와 엔화 약세를 이중고로 짚었습니다. 에너지를 달러로 사 오는 나라라서 유가가 오르면 달러 결제 수요가 커지고, 그 자체가 엔 매도 압력이 됩니다. 엔이 약해지면 수입액이 또 불어나는 악순환이기도 합니다.

다음은 투자입니다. 머니투데이 7월 12일 자 기사에서 바클레이스는 일본의 연간 해외투자 유출을 약 40조엔으로 추산했습니다. 무역까지 포함해 일본이 한 해 밖에서 벌어들이는 경상수지 흑자(약 20조엔)의 두 배라서,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많은 셈입니다.

나가는 돈에는 가계도 있습니다. 일본은 2024년부터 비과세 투자 계좌인 신NISA(소액투자비과세제도)를 크게 넓혔고, 한국경제 2025년 8월 기사 (새 창에서 열림)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일본 개인투자자가 펀드로 순매수한 해외 금융상품이 10조4000억엔으로 2015년 이후 가장 많았습니다. 같은 흐름은 지금도 이어져서, 머니투데이 7월 12일 자 기사가 전한 일본증권업협회 집계로는 주요 증권사 10곳의 NISA 누적 매수액이 올해 5월 말 9조엔이고 협회는 그 절반 이상을 해외 투자금으로 봅니다. 노후 자금을 굴리려는 저축이 엔을 팔고 달러 자산을 사는 흐름으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무역적자와 해외투자, 가계 저축의 공통점은 금리로 되돌리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캐리 트레이드처럼 금리차를 노리는 돈은 금리차가 좁혀지면 청산되어 돌아오지만, 에너지 수입 대금과 가계의 노후 투자는 일본은행이 금리를 조금 올린다고 방향을 바꾸지 않습니다.

재정 우려가 만든 나쁜 금리 상승

그래도 금리가 오르면 엔에 도움은 돼야 합니다. 그런데 올해 일본에서는 금리 상승과 엔 약세가 같이 왔습니다. 신규 10년물 국채 금리는 7월 7일 장중 연 2.850%까지 올라 1996년 10월 이후 약 30년 만에 가장 높았는데, 엔은 그 무렵에도 약세였습니다.

시장이 보는 원인은 재정입니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식품 소비세의 2년 유예를 공약했는데 세수 5조엔이 사라지는 확장 재정입니다. JP모건은 머니투데이 7월 12일 자 기사에서 일본의 국가부채가 GDP의 237%인 점을 들어 엔화의 끝없는 약세가 재정 리스크를 가격에 반영하는 유일한 통로로 남았다 (새 창에서 열림)고 평가했습니다. 나라가 빚을 더 낼 것 같아서 오르는 금리는 통화를 끌어올리지 못하고 같이 끌어내린다는 것이고, 같은 기사는 이를 나쁜 금리 상승이라고 불렀습니다.

물가 쪽 사정도 같은 방향입니다. 글로벌이코노믹이 전한 외환 전문가 사사키 토오루의 분석 (새 창에서 열림)에 따르면 일본은행의 6월 설문에서 1년 뒤 물가가 오를 것이라고 답한 개인이 90.4%로 2006년 조사 시작 이후 가장 많았습니다. 같은 분석은 일본은행의 인상이 물가를 따라가지 못해 실질 금리(명목 금리에서 물가 상승률을 뺀 값)의 마이너스가 커지면, 예금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흐름이 빨라진다고 경고했습니다. 예금자 입장에서 엔으로 들고 있는 돈은 가만히 있어도 가치가 줄고 있으니, 앞에서 본 가계의 해외투자와 정확히 맞물립니다.

역대 최대 개입이 밀린 이유

일본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머니투데이 7월 12일 자 기사에 따르면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은 4월 말부터 5월 27일까지 역대 최대인 11조7349억엔을 들여 엔을 사들였습니다. 환율을 161엔 부근에서 155엔 안팎까지 되돌렸지만 효과는 한 달을 가지 못했고, 엔은 개입 전보다 더 약해졌습니다.

7월 31일에는 미국까지 나서 두 나라가 함께 엔을 사들였습니다 (새 창에서 열림). 두 나라가 엔 약세를 막으려 공동으로 엔을 산 것 (새 창에서 열림)은 1998년 이후 28년 만입니다. 미국이 남의 통화를 구하러 나선 데는 자기 사정도 있었습니다. 머니투데이 8월 16일 자 기사 (새 창에서 열림)에 따르면 일본은 5월 말 기준 1조1431억달러의 미 국채를 보유한 최대 외국인 보유국이라, 일본이 개입 자금을 마련하려 미 국채를 팔면 미국 장기금리를 밀어 올릴 수 있고, 미국 언론들은 이번 개입을 그 매도 가능성을 낮추려는 방어전으로 평가했습니다. 가장 강한 형태인 공동개입도 일주일을 못 갔습니다. 엔/달러는 개입 직전인 7월 30일 163.32엔에서 8월 4일 157.33엔까지 내렸다가 도로 올라 이달 들어 157~159엔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개입이 밀렸다는 사실 자체가, 앞에서 짚은 원인들이 맞다는 방증이라고 봅니다. 개입은 시장에서 엔을 사는 행위일 뿐이라, 무역적자도 가계의 해외투자도 재정 우려도 지우지 못합니다. 프랭클린템플턴연구소의 크리스티 탄은 개입이 근본적인 산수를 바꿀 수는 없다 (새 창에서 열림)고 표현했습니다. 국제결제은행 집계로 하루 9조6000억달러가 오가는 시장에서, 원인이 그대로인 채 방향만 거스르는 매수는 결국 잦아들 수밖에 없습니다.

원/100엔은 왜 따로 움직이나

여기까지는 엔을 달러와 비교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환전할 때 적용되는 값은 원/100엔이고, 이 값은 올해 전혀 다르게 움직였습니다. 한국은행 고시 기준으로 6월 9일 965.51원이던 원/100엔이 8월 19일 884.31원까지 내려와 올해 가장 낮습니다.

엔이 그사이 더 약해진 것이 아닙니다. 같은 기간 엔/달러는 160.18엔에서 159.56엔으로 0.4% 움직이는 데 그쳤고, 움직인 것은 원/달러입니다. 원/달러가 1,546.5원에서 1,411원으로 8.8% 내렸고, 그렇게 원화가 강해지면서 원/100엔도 내려간 것입니다. 반대로 올해 상반기에 원/100엔이 960원대까지 올랐던 것도 엔이 강해서가 아니라 원화가 약해서였습니다. 원화와 엔화는 함께 약해지는 경향이 있어서, 머니투데이가 인용한 현대경제연구원 분석으로는 2025년 하반기 두 통화가 같이 움직인 정도(상관계수, 1이면 완전히 같은 방향)가 0.94까지 높아졌습니다.

원/100엔 환율876.43전 영업일 대비 하락 10.02
90095025.0825.1226.0426.08

2026-08-21 · 876.43

월별 수치 표로 보기
월말 기준일원/100엔
2025-08-29944.79
2025-09-30943.73
2025-10-31923.62
2025-11-28937.29
2025-12-31917.63
2026-01-30932.89
2026-02-27913.38
2026-03-31946.73
2026-04-30920.58
2026-05-29945.56
2026-06-30951.98
2026-07-31902.13
2026-08-21876.43

자료: 한국은행 ECOS, 재정환율, 최근 1년 일별 (2026-08-21 기준)

저도 엔화가 싸다고 해서 일본 여행을 가려고 환전해 본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사면 비싼 일본 제품들이 현지에서는 눈에 띄게 쌌고, 다 싸니까 아예 사둘까 하는 고민까지 갔습니다. 그 고민에 답하려면 먼저 무엇과 비교해서 싸다는 것인지부터 따져 봐야 합니다. 같은 엔화라도 비교 상대에 따라 답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달러와 비교하면 엔은 지난 7월 약 40년 만에 가장 약한 수준까지 밀렸다가 지금 157~159엔대에 있습니다. 원화와 비교하면 884.31원으로, 2024년 7월의 855.38원보다 비싸고 2025년 4월의 1,012.07원보다는 쌉니다. 일본 물가와 비교하면 또 다릅니다. 머니투데이가 전한 닛케이 분석은 엔의 실질 가치(엔으로 실제 살 수 있는 물건의 양)가 약 31년 전의 35% 수준이라고 했는데, 일본에서 물건값이 싸게 느껴진 체감이 바로 이 비교에 잡히는 것입니다.

무엇이 바뀌는지 볼 세 가지

이 글이 확인한 원인은 셋입니다. 아직 남아 있는 금리차, 무역과 투자와 가계 저축이 한 방향으로 만드는 엔 매도, 그리고 금리 상승을 통화 강세로 이어 주지 못하는 재정 우려입니다. 전망 대신, 각 원인이 사라지는지 확인할 수 있는 곳을 적어 둡니다.

엔화가 싸 보이는 날 확인할 첫 숫자는 원/100엔과 엔/달러 두 개입니다. 엔/달러가 그대로인데 원/100엔만 내렸다면 그것은 엔의 사정이 아니라 원화의 사정이고, 엔을 끌어내리는 세 원인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참고 자료

이 글은 시장 원리에 대한 해설이며 특정 상품의 매수·매도 권유가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이용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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